Bible of 21th Century-Laudato Si’

“21세기 지구인의 바이블-찬미받으소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역사학자 린 화이트는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1967)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우리 시대가 당면한 환경재앙을 초래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이 과학기술이 발전한 근대 이후 시작됐다는 통념을 수정한다. 18세기는 전통적으로 지적이고 사변적인 귀족의 영역이던 과학과 장인의 행위지향적 생활영역이던 기술이 이전 세기의 민주주의 혁명정신 덕분에 결합하면서 자연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개발, 수탈이 본격화된 시기이다. 그러나 이런 결합을 가능하게 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은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서구문명, 나아가 글로벌 자본주의 문명의 토대가 된 라틴세계의 과학은 중세 이전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던 이슬람과 비잔틴의 과학지식을 11세기부터 번역, 수용하기 시작해 13세기에는 확실한 우위를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진리탐구가 주목적이던 과학은 인간의 자유의지, 자연 정복, 영원한 진보 등의 개념에 바탕을 둔 서방기독교 문화와 점차 결합한다. 이는 기독교 자체의 교리라기보다 서유럽의 전통과 습속이 결합된 문화인데, 결과적으로 자연을 이용대상으로 바라보고 철저히 객체화하는 근대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배태한다.

화이트에 따르면 이런 지배적 정신을 거스른 유일한 인물이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1226)이며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 이후 가장 급진적 인물이기도 했다. 새와 대화하고 늑대를 설득하는 능력이 있었던 그는 인간을 모든 피조물의 군주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연과 가난한 이들을 포함해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이전의 상태, 즉 하느님과의 관계(worship), 동료 인간과의 관계(partnership),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stwardship)가 모두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는 “프란치스코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천한다”는 말로 논문을 끝맺는다.

로마주교가 되면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이 최초의 생태관련 회칙인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남미 해방신학에 정신적 뿌리를 둔 그는 자연파괴가 초래한 재앙적 결과를 최근 과학지식으로 짚어내고, 그것이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만큼 빈곤문제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고 역설하며, 이는 철학과 영성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지침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효과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1)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2)

2015년 6월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서 6장 246항으로 이뤄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직접 발표했다. 회칙이란 보편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 사목교서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의 사회·윤리적 문제에 비춰 해석하고 적용원리와 방안을 제시한다. 교황문헌의 분류체계인 회칙, 교황교서, 교서, 교황권고, 권고, 담화, 연설, 강론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이 회칙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제 선정부터 집필,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한 첫 회칙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호소하고 싶었던 내용이다.

프란치스코가 생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첫 교황은 물론 아니다. 바오로 6세는 1971년 회칙 ‘80주년’에서 “인간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해 파괴하고 그 재앙이 이제 바로 인간에게 미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요한바오로 2세는 1990년 세계 평화의날 담화에서 “새로운 생태적 각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으며,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 바티칸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며 전 세계의 10억 가톨릭신자는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생태론을 독립적인 한 문헌에서 온전히 다루기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생태위기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 중 한 가지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문제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이 회칙의 진보적 성격이다. 가톨릭은 사회교리를 통해 빈곤문제 해결과 분배정의를 요구해 왔지만, “찬미받으소서”는 더 나아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해방신학의 관점을 채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황 자신은 해방신학과 거리가 있으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빈민사목을 담당하면서 빈곤문제를 누구보다 절실히 고민했다. 브라질 출신의 대표적 해방신학자이며 사상문제로 사제직을 박탈당한 레오나르도 보프가 회칙을 즉각 환영할 정도였다.

“찬미받으소서”는 오염과 기후변화, 물의 문제, 생물다양성의 감소,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의 문제를 차례로 지적한 뒤 지구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태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어 환경·경제·사회 사이의 관련성을 담은 통합생태론(integral ecology)을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와 국가, 지역, 개인이 지식과 영성을 조화시키는 가운데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회칙은 티벳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 반기문 당시 UN 사무총장, 과학잡지 사이언스 등 수많은 개인과 단체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그 중 가장 진지한 그룹은 가톨릭 대학들이다. 노트르담대, 조지타운대, 시카고 로욜라대 등 미국 내 96개 가톨릭 대학과 세계 32개국의 80개 가톨릭 대학은 “찬미받으소서”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연구와 교육, 기관운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대로 생태적 세계시민을 육성하고, 개방적이고도 솔직한 (학문간)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고등교육에 주어진 중요한 책임을 다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성명은 다시 국제가톨릭대학연합회를 비롯해 가톨릭대학협회, 예수회대학협회, 프란치스코회대학협회 등의 지지를 받았다. 성명에 참여한 대학들은 현재 회칙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2015년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 미국생태학회(Ecological Society of America) 역시 지지성명에서 “오늘날 생태적 도전을 뒷받침하는 과학 지식에 근거해 책임감 있는 지구 수호를 요청한 웅변적 탄원”이며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역 규모에서 글로벌 규모로 행동의 폭을 넓히라는 탁월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또 “지속가능성을 위한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는 만큼 세계의 종교, 정치, 과학 지도자들 사이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ESA는 1만명의 생물학자와 생태과학자가 소속된 유서 깊은 단체로, 워싱턴 D.C.에 본부가 있으며 90여개국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조지메이슨대 기후변화커뮤니케이션센터와 예일대 기후변화커뮤니케이션프로그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발표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가톨릭신자와 비신자 등 900여명을 대상으로 ‘프란시스 이펙트’라는 제목의 설문조사를 그 해 10월 실시했다. 그 결과 발표 이전인 4월과 비교해 6개월 사이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교황의 의견이 자신의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각 35, 17%p), “개발도상국(각 17, 15%p)과 저개발국(각 20, 12%p)의 주민들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다” 등의 답변이 모두 증가했다. 기후온난화를 도덕적 문제(각 8, 6%p), 사회정의(총 8%p) 또는 빈곤(총 5%p)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도 늘었다. 양 기관은 “회칙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도 감소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교황이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언급한다면 효력이 더 파급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발표와 함께 제정된 ‘창조세계 보전을 위한 기도의 날’ 3년째인 지난해 9월1일 그리스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첫 공동메시지를 발표했다. 두 종교 수장은 “인간환경과 자연환경이 함께 악화되고 있으며, 이런 지구의 악화는 가장 약한 사람들을 짓누른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지구 모퉁이의 가난한 자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또 “우리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그 응답이 합의되고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면 생태위기와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결단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찬미받으소서”는 일회성 발표가 아니라 지속적인 언급과 전파의 대상이다.

 

생태경제와 돌봄의 문화

이 회칙의 핵심은 통합생태론이다. 통합생태론이란 생태위기가 비단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조건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풀어가야 한다는 사고를 담고 있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기술에서 나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힘과 비판, 경제와 발전에 대한 다른 이해 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 의미,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요성,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중대한 책임,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16) 등이 통합생태론이 사유하는 주제들이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의 긴밀한 관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한 관심사다. “대부분 가난한 이들은 온난화와 관련된 현상에 특별한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계는 자연보호지역과, 농업과 어업과 삼림업과 같은 생태계에 관련된 일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자연훼손으로 악화된 빈곤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지만 “국제협약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이 포기한 삶에 대한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25) 그렇기 때문에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하며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49)

그러나 가난한 이들이 생태난민만은 아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빈익빈 부익부를 가중시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생산효율성이란 이름으로 고용을 줄이는데 반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고령자, 청년 미취업자도 통합생태론으로 접근해야 하는 빈곤문제의 대상이다. “현대 세계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며 “급속한 변화와 훼손으로 상황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이 “대규모의 자연재해와 사회적 위기, 심지어 경제위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61)는 점을 생태회칙에서도 어김없이 지적했다.

교황은 인간이 초래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든다. 기술과 그 발전을 획일적이고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는 패러다임으로부터 “논리적 이성적 절차에 따라 외부대상을 점진적으로 파악하여 지배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나타나며 “무한성장 또는 제약 없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쉽사리 받아들이게”(106) 되었다. 이는 “인간은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며 “아무런 통제수단도 없이 커져만 가는 자기의 힘 앞에 무방비로 노출”(105)됐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기술의 산물이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특정권력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기회들을 통제”(107)하는 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제는 “이윤을 목적으로 모든 기술 발전을 받아들이며 인간에게 미치는 잠재적 악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109)에 상태에 이르렀다. 그 결과 개인이 이런 기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일은 반문화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교황은 이 지점에서 명시적이지 않지만 지역경제, 사회적 경제, 생태경제의 손을 들어준다.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면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191) 하며 “발전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194)하다. 일부 지역에서 협동조합들이 생겨나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해 자급자족하고 남는 에너지는 팔기까지 하는 사례를 들면서 지역의 개인과 단체들이 “큰 차이”를 만들고 “더 큰 책임감, 더 강한 공동체 의식, 특별한 보호 능력, 더 많은 창의력, 자기 땅에 대한 깊은 사랑”(179)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용위기와 사회불평등 문제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서 나타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소속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실업상태이며, ILO(국제노동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구직 중인 실업자가 전 세계적으로 2억 200만명에 이른다. 사회적 경제가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지속가능한 생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ILO는 사회적 경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UN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인간복지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 전체의 복지를 추구하는 생태경제와 쌍을 이룬다. 현재의 경제성장은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을 생태계로부터 획득해 사용하고 그만큼의 폐기물을 생태계로 배출하면서 생태계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그런데 이 문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고수하는 기존 경제학, 생태계를 여전히 보수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현대 과학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생태원리에 중점을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생태과학자 캘빈 드윗은 “찬미받으소서”가 갖는 의미를 고대부터 이어지다가 18세기에 끊어진 “청지기정신(stewardship)의 회복”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생태경제학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드윗에 따르면 청지기정신의 근거는 구약성경 창세기 2장15절(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시고)이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지구를 경작해서 생존수단을 마련하는 권리와 동시에 그것을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이는 인간의 일방적 책임이라기보다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누리고 그것을 되갚는 호혜적 관계를 뜻한다. 여러 문헌에서 청지기정신은 정원과 정원사의 관계로 은유되며, 결실(fruitfulness)과 휴식(sabbath)이라는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 지구용량을 초과하지 않는 경제에 대한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처음 기록된 언어인 그리스어를 보면 생태와 경제, 청지기정신 즉 인간에게 맡겨진 자연보호의 책임 사이의 관계는 더 명확해진다. 청지기의 그리스어인 ‘oikonomos’는 집(oikos)과 규범(nomos)이 합쳐진 말이며 이는 경제(economy)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생태학(ecology) 역시 집이라는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인간의 거처인 생태계의 규범을 따르는 게 경제이며 경제의 운영은 지배자가 아닌 관리자로서 청지기의 일이다. 그만큼 경제에는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보존하는 책임이 따른다. 교황은 청지기정신의 회복을 ‘돌봄의 문화’(231)로 표현한다. 돌봄(care)이란 단어는 부제(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를 비롯해 스물다섯 차례나 반복된다.

“찬미받으소서”는 오늘날 주류경제에 대한 대안이 어디서 시작돼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생활양식을 바꾸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입니다.”(206) 소비자로서의 선택이 경제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대안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본의 잉여가치 실현의 계기인 유통과 소비 부분까지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우애와 아름다움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해와 달 또는 가장 작은 동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 우리가 자연과 환경에 접근하면서 이러한 경탄과 경이에 열려있지 못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우애와 아름다움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지배자, 소비자, 무자비한 착취자의 태도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11)

교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변화의 요구 앞에서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경탄과 경이, 우애와 아름다움이 없이 윤리와 금욕만으로는 현재의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를 타개할 수 없다.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연유로,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217)한다는 지적처럼 팽창일변도의 경제에 기초한 삶은 사회구조의 개선과 함께 개인의 결단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것을 경탄하며 음미하는 법”(215)을 배우는 것,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것”(220) 등은 많은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평화롭지 않고서는 절제하면서 만족한 삶을 이룩할 수 없”기에 “제대로 이루어진 내적 평화”(225)는 궁극적 목표가 된다.

비록 가톨릭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교황은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회칙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사려 깊게 서술했으며 스스로 해결방안을 내놓기보다 종교 간의 대화, 종교와 과학의 대화,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의 대화를 강하게 권유한다. 발표 2년이 지난 지금도 신학부터 경영학까지 토론주제로 채택되며 깊은 파장을 드리운 “찬미받으소서”는 생태위기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 미래세대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급하는, 21세기의 성경으로 남을 것이다.

생태회칙은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검증되고 확신에 찬 이야기에 가깝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역사에서 보더라도 1960년대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철 카슨의 이야기이며 19세기 말 개발광풍 속에서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만든 존 뮤어의 이야기이다. 800년 전에 살았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식과 실천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그러나 오래 반복되면서 정치화, 주변화되고 진부해진 생태이슈를 세계적 슈퍼스타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큰 그림으로 제시한 사건은 이를 위해 노력해온 많은 이들에게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아도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윤정 미국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 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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