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성장만 좇는 사회, 지구 망가뜨리는 것 말고 가르치는 게 없다”

미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열린 ‘한·미 대화’

“미국 교육제도에서 최악의 학과목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경제학이다.” 데이비드 코르텐 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가 이 말을 꺼내자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비즈니스스쿨 강연장이 아니다. 7일(현지 시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CGU)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한·미 대화’ 자리다.

코르텐 교수는 콘퍼런스에서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며 소수를 위해 봉사하는 다국적기업과 공공의 목적을 내팽개친 국가의 문제를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사이·<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때> 개정판) 저자인 그는 성장과 개발 폐해를 오래 비판해 온 학자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국제 경영과 조직 이론으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젊은 시절 보수주의자였다. 이른바 ‘저개발국’을 위한 개발에 매료된 그는 미국의 공식적인 대외 원조 프로그램인 미국국제개발처에서 성장 담당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삶과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앗아가는 개발과 원조, 성장의 문제를 깨달으며 개발 이론의 주요 흐름에서 벗어났다. 콘퍼런스에서 비판의 화두는 ‘경제성장’이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급진 성향을 지닌 여러 미국 학자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존 캅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조연설에서 “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는 사회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성장’을 양적인 용어로 여길 때 ‘지속가능한 성장’은 부적격의 모순어법”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끝낸다면, 보통 사람들과 이들의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정부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수용한 한국 참가자들의 문제의식도 비슷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극찬하기 9시간 전 강금실 지구와사람 포럼 대표(변호사)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를 비판했다.

강 대표는 개막식 때 캅 교수의 기조연설에 답하며 “한국은 미국 모델을 따라 단시간에 산업화를 이뤄냈다. 한국 성장 사례는 거의 신화가 되다시피 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인데, 한국은 여전히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에 붙잡혀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127조 1항)는 현행 헌법을 예로 들며 “요즘엔 생태에 대한 고민 없이, 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도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장인 이재돈 신부가 ‘한국의 환경운동과 종교의 역할’ 발표에서 지적한 것도 경제성장의 허구, 즉 폐해의 실상이다. 그는 1960년대 산업화에 따른 환경 재앙,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태, 2000년대 이후 반원전 운동을 소개했다. 신지예 한국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콘퍼런스 이틀째인 8일 ‘생태문명의 정책과 정치’ 세션에서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 신화가 만들어낸 괴물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며 4대강 사업과 747공약을 거론했다. 신 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도 했다.

대안과 미래? 그것은 ‘생태문명’이다. 이 화두는 급진적이다. 콘퍼런스를 기획한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과정사상연구소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의 한윤정 연구원은 “우리가 기후변화 같은 예정된 파국을 벗어나려는 희망을 가지려면 급진적인 변화가 당장 필요하다. 부분적인 개선은 현 상황을 유지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생태문명을 현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내놓는다.

존 캅 교수는 문명 전파에 앞장선 학자다. 로즈마리 류터와 함께 북미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꼽히는 그는 여생의 최대 과업을 생태문명에 걸었다고 한다. 그는 93세다. 그가 생태문명을 대안으로 떠올리게 된 것은 글로벌 자본의 지배 때문이다. 오로지 돈을 위해 돌아가는 미국 사회의 폐해 때문에 대안에 더 매달리게 됐다.

그가 강조한 것은 생태계를 위한 경제, 인간을 위한 공동체 수립이다.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려면 경쟁과 성적 중심의 현 교육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8일 첫 세션의 기조 연설자인 브라이언 스윔 샌프란시스코 융합학문연구소 교수는 교육을 강조한 캅 교수를 언급하며 “현재 교육은 아이들에게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생태문명을 위한 교육제도는 인간관계 강화, 상호존중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다.

주제 발표에 나선 이들은 한·미 각 분야 전문가와 중국 학자, 일본계 미국인을 포함해 총 30명이다. 이들은 7~8일 ‘생태문명 패러다임’에서부터 ‘지구법’ ‘생태문명을 위한 경제학’ ‘중국의 생태문명 비전’ ‘생태와 포스트휴먼 지성’ ‘생태학적 세계관과 생명과학’ ‘생태문명의 정책과 정치’를 논의했다. 9일 ‘생태문명의 현장’ ‘생태문명과 교육’을 주제로 한 세션을 진행한 뒤 폐막한다.

논의는 광범위했다. 의식주 해결 못하는 개별 인간의 처지부터 자연에 인간 권리를 부여하는 자연법, 인간·지구와 우주의 관계 문제까지 나왔다.

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으로 이번 행사를 주도한 정건화 한신대 교수는 “초보적 논의 단계다. 생태문명 같은 사회 혁신은 경계와 영역을 넘나들어야 한다. 한·미와 중·일의 여러 전문가와 활동가가 생태문명을 위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맺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과정사상연구소 공동디렉터인 이동우 목사(패서디나장로교회 담임목사)는 “이번 컨퍼런스는 생태적 지속 가능성과 정의의 문제를 두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질서에 대한 철학적이고도 현실적인 접근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며 “궁극적인 비전은 한국적 생태문명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다문화, 페미니즘, 종교간 대화 같은, 문제들로 논의가 확장되면 좋겠다”고 했다.

문명은 시기(근대문명)나 지역(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 도구수단(기계문명)과 어울리던 말이다. 생태는 가치·목표를 담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조합과 다르다. 가치를 지향하면 현실 문제와 부딪치기 마련이다.

콘퍼런스 마지막 세션이 끝나고 질의응답에서 중국방문학자 가오위엔은 이렇게 물었다. “생태를 위해 차 대신 자전거를 타라고 권유한다. 베이징은 하루에 차 500만대가 다니는데, 자전거를 타며 매연을 맡아야 하나. 마스크를 쓰라고도 하는데 그 마스크는 누구 만드나.” 생태문명 담론·운동이 극복해야 할 현실의 과제였다.

김종목 기자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71109204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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