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생태문명 대담: 철학·신학자 존 캅 주니어, 도올 김용옥존 캅 “농사는 가장 중요한 직업”…도올 “북한에 생태적 희망 있어”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1861~1947)가 주창한 과정철학과 과정신학은 세상이 물리적 환경이나 사물보다는 주관적·객관적으로 체험되고 이해되는 사건·과정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또 이러한 각 사건은 수많은 다른 사건들과 연결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이어받은 화이트헤드주의자(Whiteheadian) 중 대표적 인물이 미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캅 주니어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명예교수(94)다.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 열린 ‘2019 한국생태문명회의-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존 캅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학자들, 타 종교인과도 교류하며 생태문명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동양의 관계적·생태적 철학은 화이트헤드 철학과도 닿는 부분이 있다.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71)는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을 번역·출간해 한국에 화이트헤드 철학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화이트헤드로 이어진 두 사람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출판사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신학으로 시작해 사회·정치를 넘나들며 ‘생태문명과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눴다.

존 캅 = 화이트헤드의 책을 번역했다고 들었다.

도올 = 명말 사상가 왕부지(王夫之)의 철학을 공부하다 우연히 화이트헤드의 책을 읽었고, 둘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문제는 화이트헤드의 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나름 이유가 있었겠지만, 너무 어렵게 설명한 것 같다.

존 캅 =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전해진다. 책은 강의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그는 자신의 체계적인 사고를 치밀하게 보여줄 때가 됐다고 결정한 것 같다. 첫날 600명이 강의에 왔는데, 둘째 날에는 6명이 왔다고 한다(웃음).

도올 = 몇몇 사람들은 신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화이트헤드의 철학 체계는 완벽할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존 캅 = 서양 학계에선 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금기시된다. 미국 대학에선 종교학과에서도 신에게 어떤 설명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화이트헤드에게 신은 중요한 설명적 역할을 맡는다(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전환한 현대철학 흐름 속에서 화이트헤드는 존재론을 포기하지 않은 철학자다).

도올 = 신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유일신을 떠올리지만, 화이트헤드는 전통적인 유일신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존 캅 = 많은 유일신교가 초자연적이거나 범신론적이다. 누군가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면 신은 자연 안에서 맡을 수 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신은 자연 밖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신은 자연 안에 있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 존재를 포함한다. 신은 모든 사건에 관련해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초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은 신을 포함하는 자연만이 있다는 의미다.

도올 = 한국은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기독교적인 혹은 유대교적인 신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사상가들 혹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지난 2세기 동안 기독교의 신과 함께해온 시간을 반성해

볼 때, 기독교가 한국에 온 것은 불행이었고 이로움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쳤다고 생각한다.

존 캅 =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일들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도올 = 기독교는 배타성을 가르쳤고, 타인을 지배하는 것을 가르쳤고, 사람들 정신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려 했다. 소수를 제외하고 한국 기독교는 사회의 진보에 해롭다. 모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독재주의는 여전히 건재하고, 그것의 독단주의는 모두 정당화됐다.

존 캅 = 같은 지적이 미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 대학에서 신이 배제되었다고 이야기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도올 =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뜻하지 역사적인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존 캅 = 나는 예수의 제자이지만, 사람들의 정의에 따라선 기독교인이 아닐 수도 있다. 기독교 후기(로마의 국교 승인 이후)에 사람들이 전능한 신을 말한 것은 실수였고, 황제 숭배였다고 생각한다. 우린 힘이 아닌 사랑을 숭배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힘을 숭배한다. 그게 기독교의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예수는 ‘신은 사랑이고, 우리의 적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의 가치를 처음 실현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힌두교에 속했고, 기독교 후대의 산물들과 섞이지 않았기에 더 쉽게 예수의 제자가 된 것 같다.

도올 = 간디는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고, 소로는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간디의 사상은 일종의 도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캅 = 화이트헤드는 스스로 서양 근대철학보다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철학에 가깝다고 명확히 말했다.

도올 = 역사적 사실로서의 예수를 생각해볼 때 노자, 부처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열정이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다. 희생은 스스로의 존재를 비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무아(無我)와 도교의 마음과 존재를 비우라는 것은 통하는 바가 있다.

존 캅 = 차이를 볼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한쪽은 좋고, 다른 쪽은 나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차이에서 더 배울 수 있다. 예수의 자기희생과 노자의 비움은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올 = 존 캅 선생은 과정신학을 배경으로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

존 캅 = 생태문명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가져왔지만, 유엔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도 받아들이길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다(존 캅은 중국 공산당이 2012년 생태문명을 공산당 당헌으로 채택하는 데 상당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다. 생태문명 건설에 있어 중국보다는 미국에 대해 비관적이다).

도올 = 생태문명이 우리의 목표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실현시키는가에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권력구조, 기업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시민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존 캅 = 중국은 정부에서 위에서 아래로 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도올 =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중국 사람들의 생태적 정신은 부족하다고 본다. 모든 일에서 오염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에 가면 생태적 상황이 아주 끔찍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중국 정부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비전과 행동이 합쳐졌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시진핑이 헌법을 바꿔서….

존 캅 = 주석의 3연임을 가능하게 했다.

도올 = 비록 중국이 공산당 독재체제를 가지고 있어도, 주기적인 지도자 교체 덕분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인정하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 교체를 거부했으니 도덕적 리더십을 잃어버린 것이다.

존 캅 = 도덕적 리더십의 상실로 생각하진 않는다.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공산당 내에서 시진핑의 정파가 더 낫다고 본다. 시진핑은 생태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오염을 줄이려 하고 있다. 또한 지방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인구가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 역전시켰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분권화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리더십을 미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도올 = 생태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도교 더 나아가 유교와 불교를 가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소유의 거부를 의미한다. 중국의 작은 마을을 보면, 매우 생태적인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체계란 어떤 것을 짓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있는 바로 그곳들이다.

존 캅 = 산업화로 인한 시골의 파괴를 끝내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희망이 있다고 본다. 이미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는 상황에서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도올 = 생태문명의 전파는 동아시아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국은 생태적 의식이 기초적인 수준까지는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존 캅 = 멋진 일이다. 한국에도 큰 희망을 걸고 있다.

도올 = 존 캅 선생께서 중국에 희망을 걸 듯, 우리는 북한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시골은 아직 전통적이고, 산업적으로 개발되지 않았다. 북한이 생태문명을 향하고, 북한이 이를 실현하다면 정말 이로운 일이다.

존 캅 = 북한이 전통적 농업문화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굳이 현대화를 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통적으로 소작농들은 처우가 나빴고, 잉여작물은 땅 주인에게 빼앗겼다. 간단히 말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좋지 않다. 농민들이 땅을 가지고 이득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

도올 = 이전부터 농부들이 공무원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농사라는 행위에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이다.

존 캅 = 농사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다. 이미 땅은 오염되고, 날씨는 더 이상 농사를 짓는 데 알맞지 못하다. 적은 땅에서 많은 음식을 만들어내려면 농부들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교육체계는 모두 도시화에 맞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지만, 흙과 식물의 성장과 같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

도올 = 존 캅 선생은 (유교적 의미의) 성인인 것 같다. 나이부터 모든 사상을 받아내는 개방적 정신까지.

존 캅 = 오늘날 종교 역사에서 훌륭한 발전은 학자나 일반인들이 다양한 전통의 매력과 문제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교가 등장할 수도, 기존 종교를 바꿀 수도 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말 끔찍했다.

도올 = 나의 전략은 중국 고전, 한국 고전, 서양 고전 등에 온갖 주해를 다는 것이다. 특히 마가복음과 로마서에 세세하게 주해를 달았다. 이를 통해 기독교 자체를 하나의 인간의 메시지로 해체하려 했다. 사람들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관대한 형태의 기독교를 바란다.

존 캅 = 인간은 거의 모든 곳에서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해내려는 강한 경향이 있다. 그리고 ‘타자’를 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미국의 공공정책에서 아주 명확하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를 안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트럼프를 악마로 만드는 걸 보면…(존 캅은 중국 생태문명이 모순적이면서도 긍정적 측면이 있듯이, 반환경주의자인 트럼프의 당선이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도올 = 트럼프는 적어도 우리에겐 좋다. 트럼프의 정치적 생각을 좋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트럼프는 미국 역사 현실의 한 측면을 상징한다. 그러한 이단아가 미국에 필요할 수도 있다. 그 이단아가 남과 북이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그건 좋은 일이다.

존 캅 = 트럼프가 자신의 대안을 ‘민족주의’로 밝혔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는 아니다. 그의 본능은 고립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지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힘을 약화시켰고, 그건 세계에 좋은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미국인들이 있다. 한때 진실한 국제주의가 있었지만, 이젠 정치적 담론의 부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

도올 = 아니다.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연결돼 있으니. 선생께서는 일본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유럽에서의 독일처럼 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를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야만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그냥 과거의 잘못을 인정했다면!

존 캅 = 일본은 민족주의의 극단적 사례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기억은 좋지만, ‘천황제’가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한국과 중국에 끔찍한 짓을 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도올 = 미국 정부가 일본을 절대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

존 캅 = 정부는 힘의 균형을 원하지 않는다. 지배하길 원한다.

배문규 기자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91007215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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