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장-자급

돌봄 관계가 인간-인간의 관계에 머무르는 것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생물학적 기계인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재화가 필요하다. 피터 라인보우가 『마그나카르타 선언』에서 잘 보여주듯, 중세 잉글랜드 장원에서 땅 없는 이들의 생계를 뒷받침한 것은 공통장(커먼즈)으로서의 땅 혹은 숲과의 직접적인 유대 관계였다. 나무가 물질문화의 중심이던 시대에 그들이 공통의 숲에서 취한 목재와 열매 등 임산물은 건축, 요리, 난방, 생산도구에 쓰이며 그들의 일상을 지탱했다.

그러한 땅과의 직접적인 유대 관계, 즉 물질적인 기반을 오늘날 도시에서 재구축할 수 있을까? 그들이 물질적 기반과 맺었던 공통의 관계를 오늘의 맥락에서 적절하게 번역할 방법이 있을까? 그러니까 오늘날의 도시에서 땅과 공통(커머닝)할 수 있을까?

땅과 공통하기란 땅을 다시 우리의 공통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생태적 재생산 위기에 맞서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임금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댈 수 있는 그만큼 우리의 힘은 커진다. 그동안 공통장 담론은 물질적 자원의 공통화를 지나간 일 혹은 주변적인 일로, 아니면 불가능한 일로 여겨왔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 인터넷, 급속한 도시화의 맥락에서 공통장을 연구하는 이들의 글에서 물질 자원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비물질 영역의 확장이 물질 영역의 파괴와 오염에 토대를 두고 있음에도 말이다. 비물질이 우리가 보는 그런 형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신체를 부여받아야 한다. 이는 비물질 활동을 위해 지구 어딘가의 물질을 추출해야 함을 뜻하며, 이러한 추출은 결국 해당 지역의 생태계 파괴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우리에게 땅을 비롯한 물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다른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 위기가 심화될 경우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생활양식과 그 토대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말로 땅과 공통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명해야 하지 않을까?

(『기후 돌봄』, p. 18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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