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우리 삶을 파고든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결합된 환경재난의 복잡한 실체를 보여주었다.”
2020년은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 해였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인류는 현대 문명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는 위기를 실감했다.
신간 <생태문명 선언>은 ‘현 시점 대안적 미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근대문명과 첨단기술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요청을 다시 소환해야 한다”라고 제시한다. 생태문명이란 무엇인지, 생태적 원리로 우리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과 생태학에서 배우는 상호의존성의 철학은 무엇인지, 나아가 생명주의가 왜 중요한가 등을 풀어놓았다.
책에 실린 글들은 △2017년 11월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2018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열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 컨퍼런스’ △201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 컨퍼런스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선별해 재구성한 것이다.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디렉터 겸 문화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한윤정 박사가 엮고 옮겼다.
한 박사는 “우리는 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와 있다. 금융위기, 기후위기, 보건위기 등 계속되는 위기상황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넘어 포스트 자본주의를 요구한다”며 “과학기술과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문명은 한계를 맞았으며 이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다. 생태문명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대안적 미래의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생태문명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물질적 번영을 넘어 정신적 풍요의 가치를 전파하는 개념이다. 기후위기와 대량멸종, 불평등을 일으킨 산업문명을 지탱해온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한 박사는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생태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생태문명이 아니라면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환란을 막을 길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먼저 1부에서는 ‘생태문명의 철학’을 모색한다. 인간과 비인간, 정신과 물질, 과학과 자연의 이분법이 만들어낸 세계는 위계와 착취를 당연시한다. 산업문명은 유례없는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 위에서 그릇된 서사를 써왔음을 지적한다.
2부에서는 ‘생태문명의 문화’를 다룬다. 현대문화의 중심에 교육이 있는데 경제학은 무제한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반면, 물리학은 지구의 파괴를 경고하면서도 가치가 배제된 물질만을 다룬다. 생태교육이나 환경인문학이 어떻게 근대학문의 분절성을 극복하고 학문연구에 생태문명의 가치를 도입하려고 하는지 보여준다.
3부에서는 ‘생태문명의 경제’에서는 생태와 경제의 통합은 인류의 존속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선택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에너지 전환, 자원순환 등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자립, 기후위기를 막고 지역농업을 지키는 로컬푸드와 채식, 지역 단위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자치분권 등 경제를 지역으로 되돌리는 로컬경제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오로지 지속가능한 문명만이 살아남고 오래 번영할 수 있다. 장기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 진정으로 생태적 문명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런 문명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현실적인 희망의 토대다.”
◇생태문명 선언=앤드류 슈왈츠, 이재돈, 데이비드 코튼, 필립 클레이튼, 왕쩌허, 존 B. 캅 주니어, 마커스 포드, 김홍기, 정민걸, 한윤정, 제이 맥다니엘, 샌드라 B. 루바스키, 정건화 외 지음. 한윤정 옮김. 다른백년 펴냄. 280쪽/ 1만5000원.
양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