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서 벗어나는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자연과 비인간을 모두 돌봄 대상으로 삼는 기후 돌봄 정치가 필요하다. 광의의 기후 돌봄 관점에서 전환은 비단 인간을 살리는 데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와 모든 생물, 심지어 사물까지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위기의 근본 해법은 시도조차 못한 채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거나 기술론적 해결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광의의 기후 돌봄 정치의 단초는 이미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1990년대에 지구민주주의 개념을 다음처럼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참다운 형제애로 감싼다는 의미의 지구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 우리는 모든 인간이 자기발전의 권리를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까지도 건전한 존재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든 존재에는 ‘한울’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어느 것도 무시하지 않고 ‘공경’해야 한다는 해월 최시형의 삼경(하늘, 사람, 만물에 대한 공경) 사상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지구법학에 근거한 ‘자연의 권리’ 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존재 그 자체에서 권리를 인정하고 권력이 아니라 거주에서 권리의 원천을 찾는 ‘권리의 정치’ 개념을 차용하자면, 자연의 권리 사상은 정치 주체인 자연을 재인식하도록 만들고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연의 지위를 충분히 인정하도록 만든다. 나아가 모든 도시민은 집단적 예술활동으로서 도시를 창작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도시는 일종의 커먼즈라는 앙리 르페브르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도시 안팎의 땅과 산, 강과 하천, 숲 역시 공유하고 있고 인간은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오늘날 도시라는 예술작품을 공동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르페브르의 시각에서 보면, 예를 들어, 서울은 서울시민만이 아니라 한강과 북한산, 관악산과 청계천이 함께 만든 커먼즈이며 이러한 비인간 존재가 서울을 만들어낸 행위 주체의 일부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기후 돌봄』, p. 218~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