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서울 같은 대도시도 해법은 마을과 골목에서 찾아야”박원순-데이비드 코튼 좌담

박원순 서울시장

“전환도시 방향 확고하게 정할 시점
협동으로도 경제 살릴 수 있어
1 대 99의 사회, 마을에서 눈으로 확인”

데이비드 코튼 교수

“현재의 경제체제는 ‘자살경제’
공동체에 보탬 되는 경제 틀 짤 때
부자들도 미래 없다는 걸 깨달아야”

첫 만남이라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반갑게 맞이했다.

10일 아침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열린 좌담에 앞서 박원순 시장과 데이비드 코튼 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시장실 내부를 장식한 다양한 지도와 전광판을 가리키면서 잠시 환담을 나눴다. 박 시장은 코튼 교수의 ‘생태담론’에 공감과 동의를 나타냈고, 코튼 교수는 친필 서명이 담긴 자신의 영어판 저서(국내엔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라는 제목으로 2017년 출간)를 선물하며 서울시의 도시혁신 활동에 지지를 보냈다. 생태문명을 설파하는 대표적 학자 중 한 사람인 코튼 교수는 11~12일 이틀간 서울시 주최로 열리는 ‘2018 서울 전환도시 국제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문명 전환과 도시의 실험’을 주제로 내걸고 열리는 이 행사는 서울시의 도시혁신 경험을 지구촌과 함께 나누고 도시 전환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다. 코튼 교수는 첫날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도시의 역할’이란 제목의 발제를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마련한 이번 좌담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 개발·원조 일하다 ‘자본주의 비판가’로

-인류가 끊임없이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지구와 자연환경에 끼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지구의 나이를 가르는 구분으로 ‘인간세’(인류세)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인류 문명이 걸어온 길에 대한 두 분의 견해부터 듣고 싶다.

데이비드 코튼(이하 코튼) “인류란 무엇인가, 문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때다. 지금까지의 문명은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며 발전해왔다.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대중과 생명체, 지구를 억압하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재화를 창출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생명체를 파괴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자살경제’(suicide economy)라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박원순(이하 박) “큰 방향에서 코튼 교수의 이야기에 충분히 동의한다. 성장 일변도의 사회가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불평등도 키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가 처한 위기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대안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원전하나줄이기 노력을 펼쳐오고 있고, 보행친화도시로의 전환도 노력 중이다. 에너지 자립마을이나 에코마일리지 제도도 있다. 서울시도 전환도시로서 방향을 확고하게 정할 때다.”

1937년 보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코튼 교수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제개발처 고문으로 일하면서 서유럽 나라들의 개발정책이 개발도상국 빈곤층 주민들의 삶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다 물질문명의 한계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비판가’로 돌아섰다. 그가 강조하는 생태담론이 과연 발전 단계와 상황이 다른 남반구와 북반구 모두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코튼 교수는 “외국에 나가기 전까지는 이상주의적인 미국 중산층이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재 삼아 대화를 이어갔다.

코튼 “20년 동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빈곤을 줄이는 운동을 했다. 개발과 원조가 공동체 중심의 삶을 일궈왔던 주민들과 공동체에 오히려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수도 없이 눈으로 지켜봤다. 그나마 도움을 준 거라곤 보건 분야 정도뿐이다. 주민들을 땅에서 내몰고 공장의 싼 노동력으로 탈바꿈시켰다. 좀 더 발전한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돈이 중개자 노릇을 하는 사회가 됐다. 오늘 아침 여기 오기 전 레스토랑에서 밖을 바라보니 사람보다 차가 더 많더라. 차 안에는 죄다 한 사람만 타고 있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졌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 “‘사회적 경제가 대세구나’ 자신감 얻어”

박 “최근 도시 네 곳(바르셀로나·빌바오·취리히·탈린)을 다녀왔다. 바르셀로나에선 기존의 역사 흔적을 파괴하지 않고도 생활환경을 더 인간적으로 바꿀 수 있구나 느꼈다. 빌바오에선 서울시가 의장도시를 맡고 있는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에 참석했다. 86개 나라에서 1700여 명이 왔다. 경쟁 아닌 협동으로도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울시도 의욕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사회적 경제가 세계적 대세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혹시 코튼 교수가 서울시에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코튼 “박 시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난다(웃음). 도시는 중앙정부보다도 공동체를 좀 더 배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중앙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을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다.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경제 틀을 짜는 일은 도시가 더 잘할 수 있다. 서울시가 노동이사제를 시행한다고 들었다. 아주 훌륭한 정책이다. 덧붙이자면 도시는 차보다 사람을 위해 디자인돼야 한다. 개인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치, 제도, 인프라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의 전통을 살리는 도시재생도 그런 맥락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코튼 교수는 시장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서울시 보행도로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멋지다,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이에 박 시장은 지난여름 강북의 삼양동 옥탑방 체험을 떠올리며 코튼 교수의 이야기에 맞장구쳤다.

박 “마을(옥탑방)에 살아보니 마을 경제가 다 무너졌더라. 골목식당, 철물점, 미용실 이런 건 다 사라지고 죄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뿐이다. 거기서 나온 수익은 전부 본사로 돌아간다. 1 대 99의 경제를 마을에서 눈으로 확인했다.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서울시가 돈을 써도 정작 건설사 주머니로 돌아갈 뿐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서울시가 세금으로 쓰는 돈만이라도 동네 주민들한테 돌아가도록 하자, 이렇게 마음먹었다. 지역 주민들이 만드는 제품들이 팔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혹시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박 “귀한 조언 잘 새겨듣겠다.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사업을 처음 시작하자 대도시에 무슨 마을 타령이냐, 19세기 농촌경제로 되돌아가자는 말이냐 반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다. 대도시도 마을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도 해법은 마을과 골목에서 찾아야 한다. 지역과 마을의 재생이 대도시의 성장과 대립하는 게 아니다.”

박 시장은 내친김에 코튼 교수를 향해 “아예 한 달 정도 서울에 머무르면서 동네를 들여다보시라”고 웃으면서 권하기도 했다. 좌담을 마무리하며 코튼 교수는 ‘세 가지 결론’을 하나하나 정리하듯 짚었다.

코튼 “첫째, 세계 리더십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만심에서 나오는 서구의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는 동양의 사고방식으로. 둘째, 이대로는 부자들도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과 지구가 죽으면 모두 끝이다. 부를 분배하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사회로 가야 한다. 셋째,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도 너무 늦었다. 가능한 한 빨리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행·정리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2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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