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여한 거장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코르텐 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여느 경영학 전공자와 다른 행로를 걸었다. 1937년 보수 중상류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수주의자로 미 공군 대위로 복무한 그는 공산주의 확산에 두려움을 느꼈다.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은 미국 국제개발처의 경영관리 고문으로 일하며 아시아·아프리카·남미에서 일하던 시기다. 그는 개발과 원조가 빈곤층을 통제하며 삶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자본주의 비판자로 나선다. 생태와 지구의 미래를 고심한다는 점에서도 다른 경영학자와 구별된다. ‘생태문명’ 담론을 주장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이번 콘퍼런스를 기획한 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코르텐 교수를 만나 생태문명과 기업지배·성장중심 경제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건화=자신의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눴다. 첫 번째가 25년 학생, 교수, 연구자, 경영관리 자문관으로 지낸 시기다. 이후 30년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국제개발사업에 참여했다. 그 후 20년 기업지배와 ‘생명체계 원리’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를 위한 대중교육과 시민운동에 참여해왔다. 공부·연구과 이론 적용과 실천의 삶을 살아온 데 존경을 표한다. 그 3단계 삶을 관통해온 믿음, 가치관이 있었는지. 세 번째 단계 삶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특별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다. 무엇이 당신의 세 번째 삶이 첫 번째, 두 번째 당신의 삶의 궤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나?
코르텐=1992년쯤 아시아에서 일할 때다. 미국에서 배운 경영학으로 가난한 나라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성공’을 가져다주려 갔는데, 되레 심해졌다. 인도인 친구가 ‘네가 할 일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주류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서구의 개발과 원조, 초국가 기업의 지배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 경제에 문제를 일으켰다. 자급자족하던 농민들을 땅에서 공장으로 즉 임금노동자로 밀어냈다. 기존 공동체를 해체하고, 상품경쟁 체제에 편입시킨 것이다. 미국이 세계로 수출한 경제모델이 현지 주민들을 절박한 삶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빈부 격차나 무기력한 정부 같은 자본주의 폐해가 가장 심하게 나타나던 뉴욕으로 돌아갔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경제구조를 고민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제3 시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침으로 사용할 또 다른 개발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 북반구 국가들에나 남반구 국가들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 이론이 필요하다. 그 이론은 인간사회가 삶의 자연적 과정으로부터 어째서 그토록 멀어졌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야 한다.
정건화=개발과 원조가 지역 주민의 삶을 파괴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장에서 돈을 못 벌면, 죽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전통적인 지역 사회 공동체가 현재에도 잘 작동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크든 작든 도시화 등 외부로부터 자극과 원심력은 주민들로 하여금 지역을 떠나게 하고 지역와 전통적 삶의 양식은 쇠퇴하거나 해체되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개발과 원조가 토착 지역 사회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악을 끼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르텐=개발과 원조 대신 자급자족하거나 자기 재산을 갖고 스스로 사업을 해나가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면,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이들은 늘 반대한다. 질문한 대로, 빈곤층들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이유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경제학자나 금융업자나 기업주들이다. 지금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장들은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
정건화=경제성장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은 그간 줄곧 탈성장을 강조해왔다. 탈성장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탈성장의 이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코르텐=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장에 대한 그릇된 신화가 너무나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그에 기초해서 끊임없이 신용을 창조하는 금융시스템이 있다. 대출을 통해 부채에 의존한 소비로 그 성장을 지탱하는 사회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더 심화되는 것은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다.
정건화=바빠서 이번 컨퍼런스에 오기 힘들다고 들었다. 참여한 계기는?
코르텐=존 캅 교수는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웃음) 한국에서 여러 생태 전문가들이 참석한다고 들었다. 또 하나는 생태문명 논의와 확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인간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1.7배 이상의 자원을 소비한다. 불평등도 심각하다.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 8명의 부가 가장 가난한 3억7000만 명의 그것과 같다. 지금의 제국주의적 문명은 환경파괴와 부의 집중을 가속화한다. 건강한 삶은 건강한 지구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구와 생태의 삶을 추구한다면 번성할 것이다. 돈을 좇는다면 궁극적으로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오늘날 경제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위해 조직된다. 이윤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정건화=지금의 자본주의를 자살/자폭경제로 부르는 이유는.
코르텐=이 경제체제가 체계적으로 우리 존재의 근거, 토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생명 대신 돈, 생활공동체 대신 글로벌 기업이 세상을 지배한다. 자본주의는 돈을 숭배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공적인 정책은 기업 이윤을 우선한다. 개인, 가정의 비용, 공동체의 이해를 희생시키고 말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마음속에 우리의 생계수단을 공동체와 일체화하는 게 아니라 기업과 일체화하는 게 문제다. “
정건화=민주주의보다 기업 룰이 지배하는 사회다. “과두제는 살아있으며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글로벌 불평등이 큰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Deep Democracy(심층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코르텐=그것은 living democracy(생활 민주주의)다.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대해 역동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갈등을 두고 총체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정의롭고 평화로운 해결 방안을 끌어내도록 지지하게 삶 민주주의다. 생명 존중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제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건화=자연에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게 지구법이다. 컨퍼런스에서 지구법도 소개됐다.
코르텐=그 논의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지구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를 뛰어넘는다. 자연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인간이 없다면, 기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 자원은 인류가 공동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미래세대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는 신탁 관리자일 뿐이다. 우리는 지구를 공유하는 공동의 운명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 지구 자원을 두고 사람들은 필수적인 필요 만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공유해야 한다.
정건화=지역 경제 유기체 간 수평적 공동체로서의 living economy(생활 경제)를 제안했는데, 핵심작동방식은 무엇인가.
코르텐=규모의 경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생명은 국지적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어 번성한다. 그리고 모든 의사결정은 국지적이다. 우리 몸에서도 대부분의 결정은 미시 세포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지역분권적 의사결정 원리(the principle of subsidiarity)가 관철되어야 한다. 생명체 자체는 분산적이고 분권적이다. 풀어 말하면 우리 몸 세포를 보면 스스로 생성한다. 신경계가 조정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조직되는 소사회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사회 개인들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민주주의의 보루는 지역, 커뮤니티이며 위기의 해법도 커뮤니티에 있다. 커뮤니티 빌딩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삶 경제의 목표는 삶이 중심이 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지구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 경제체제를 뿌리내려야 한다. 그 경제체제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 기업, 소규모 협동조합, 종업원 지주 회사가 지역공동체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들 경제주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 의식을 갖고 지역경제와 생산을 맡아야 한다. 생태도 중요하다. 주민과 생태를 위한 지역 경제 공동체가 핵심이다. 지금 금융자본주의 아래서는 돈이 돈을 번다. 경제학이 이런 시스템을 지지하면서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지적인 사기이자 부패다.‘
정건화=생활경제 체제 아래서 기업소유권은 어떻게 되나? 또 노조 가입율 등을 보면 한국의 노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서는 전통적인 노동운동 대신 노동자 소유나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경제 간 하이브리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들려달라.
코르텐=제도로서의 기업들이란 소수가 우리의 삶의 조건이 되는 실물자원들을 통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정치, 사법체제를 통제하고 사람들보다 더 큰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 하에서는 기본적으로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소규모 기업들의 자유경쟁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자연독점 등 대규모 기업형태가 필요하거나 효율적인 영역에서는 공기업 형태나 협동조합 형태가 바람직하다. 금융과 보험 역시 협동조합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운동의 미래는 단체교섭이 아니라 노동자 소유에 달려 있다. 협동조합이나 공기업, 사회적 기업, 민관 하이브리드 같은 혁신적인 기업조직 형태들도 마찬가지다. 소유권을 민주화해야 한다. 즉 노동자가 기본적인 자산을 갖고, 자치 경영을 해야 한다. 소유에 기반한 공동체다. 경제적 의사결정은 투명해야 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노동자 협동조합 모델을 지지한다. 민주주의에 결정적인 조건은 소유에의 참여다.”
정건화=당신의 주장은 반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가.
코르텐=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적 소유가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 특히 사회 전체에 미치는 효과 등이 반성되고 변화가 필요하다. 전체 경제에 대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적 소유가 아니라 전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통합시키는 사적 소유가 되도록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일정한 재산이 주어지는 것이 경제민주화이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초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아니라면 자기 노동에 맞는 합리적이고 적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소득으로 생활하는 것이 경제의 기본틀이 되어야 한다. 소수 부유층의 지대소득, 불로소득이 지배하는 경제여선 안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돈 자체가 악마라고 한 게 아니다. 돈에 대한 숭배가 문제다. 경제를 죽이자는 게 아니다. 지난 서브프라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중앙정책을 통해 월스트릿 구제금융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산업에 필요한 인프라 분야에 투자했더라면 경제가 더욱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정건화=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코르텐=트럼프에게는 이론이나 원칙이 없다. 트럼프가 신경 쓰는 것은 트럼프밖에 없다. 그가 아침, 점심, 저녁, 누구를 만나서든 말하는 상대가 누구든 그의 이윤을 말할 뿐이다.
김종목 기자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711132158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