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 노르베리 호지
세계화·도시화, 모든 것 파괴
인간·식물·동물과 같은 자연
기술과 같은 속도 유지 어려워
균형 맞추는 ‘지역화’가 필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서울시 도시재생 노력하지만
교육은 여전히 경쟁적 서열화
글로벌 경쟁력에 자원 집중해
숲·텃밭 생태체험 기회 늘리고
학생들 채식 선택권 보장 계획
지난 20일 아시아·중동·유럽·아프리카 대륙 150개국에서 40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기후위기를 알리기 위해 “나의 미래를 가라앉게 하지 마세요. 나의 미래를 태우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금요일 등교거부 시위’를 벌였다. 전 세계 동시다발 등교거부 시위에는 청소년이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월 ‘청소년기후소송단’을 주축으로 한 청소년 100여 명이 서울시교육청에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26일 서울시와 함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협력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미래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으로서 ‘생태전환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오래된 미래>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비영리단체 로컬퓨처(Local Futures)의 대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지난 24일 만났다. 노르베리 호지는 26~27일 열리는 ‘2019 서울 전환 도시 국제 콘퍼런스’ 참가차 한국을 방문했다.
조 교육감과 노르베리 호지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글로벌 경제의 대안으로 ‘지역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생태적으로 각성된 주체로 키워내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글로벌 기업 대신 ‘지역’을 지원해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하 조) = 당신의 저서 <로컬의 미래>는 기업 중심, 성장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면 지역 중심 경제를 회복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기업 중심, 성장 중심인 지금의 세계화가 인간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한다는 당신의 지적에 동의한다. 특히 책에 ‘경제를 지역으로 가져오기(bringing the economy home)’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역을 경제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둬야 한다고 제시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노르베리 호지) = 우리는 삶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학생이나 일반 시민은 물론 정치인, 심지어는 사업가까지도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세계화’가 ‘도시화’를 추동하고, 이 둘이 상호작용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현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인간,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은 현대의 기술과 같은 속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화가 필요하다. 지역화를 다른 말로 하면 느리게 가는 것,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린이, 가족, 식물, 동물, 모두의 삶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조 =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는 생산, 유통, 소비가 원거리 관계로 묶인다. 당신이 책에서 그 점을 지적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남미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에서 쓰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며 환경파괴가 일어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역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교통·항만 인프라와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세금과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당신이 사회경제적 삶의 지속가능성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에 기반한 자립형 순환구조를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노르베리 호지 = 맞다. 우리가 어디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누구에게 세금을 매기고, 무엇을 규제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핵심요소다. 이 요소들을 바꾸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나는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히말라야산맥 인근 고산마을 라다크처럼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기술 개발의 이점도 있다. 다만 세금, 보조금, 규제 등의 요소들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거의 모든 정부가 현재 글로벌 경제만 지원하고 지역경제는 오히려 억압하고 있다.
조 = 한국도 일정 부분 노력은 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에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면서 도시농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성적인 측면도 있다. 교육행정에서조차 여전히 한국 사회는 ‘1등’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경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 앞으로는 한국의 정책에도 ‘지역화’라는 관점이 많이 반영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그 관점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은 큰 그림을 그리는 행동주의(activism)라고 생각한다.
노르베리 호지 = 맞다. 국가 단위의 정부 정책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에게 많이 알려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오히려 정부에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정부는 기업을 위해 탈규제를 하지만, 그 결과는 실업률 증가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이다. 승자가 없다. 그러므로 지역의 다양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은 지역사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 ‘지역화’를 위해 학교 교육이 나서야
조 = 그런 차원에서 ‘생태전환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2기 혁신교육에서 생태전환교육 부분을 강조하려 한다. 경쟁적 서열화, 1등주의 교육보다도 생태적·문화적 감수성을 북돋우는 작은 실천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소비로 얼마나 많은 자연이 죽어가는지, 서울을 부양하기 위해 지구촌 너머의 다른 사회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대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망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도시에서의 삶과 디지털화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숨 쉰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학생들이 소비, 화석연료, 성장에 중독된 삶에서 벗어나 생태적으로 각성된 삶을 살게 해야 한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교육 환경과 교육 프로그램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노르베리 호지 = 소규모 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작은 마을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고민해야 한다. 서울 학생들에게 시골에서 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식량경제는 중요한 이슈다. 학생들이 농장과 도시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어떻게 하면 거대한 농기업이 아닌 작은 농장들의 생산물로 식량 수요를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세계화된 식량산업이 얼마나 큰 기후변화를 야기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를 ‘비용’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식량산업이 바뀌면 플라스틱과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조 = 서울은 대도시이면서도 산이 가까운 도시다. 가까이에서 생태체험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학생들이 숲교육과 텃밭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학교를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자연학습장이 되도록 만들려고 한다. 서울시 급식에서는 채식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은 초·중·고가 모두 무상급식인데, 친환경 식재료를 70% 이상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100만 명의 학생이 먹는 급식을 생산 농가와 유기적으로 연결해 공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 중이다.
노르베리 호지 = 한국과 서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사회적 결속력이 강하고 개인화도 덜하다. 서울의 시장님과 교육감님이 지역화를 실천하는 리더십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추구할 때 각 개인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노르베리 호지 대표와 조 교육감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열리는 ‘2019 한국생태문명회의-생태적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에서 ‘생태적 교육과 문명의 미래’라는 주제로 공개 대담을 할 예정이다.
박채영 기자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90925213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