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한신대 생태문명원은 2023년 초부터 시작된 기후 돌봄 공동연구와 ‘기후위기 시대의 돌봄’ 포럼(2023년 10월 13일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공동 주최), 『기후 돌봄』(2024년 5월) 책 출간에 이어서 우리 현실에 맞는 기후 돌봄의 이론과 방식을 탐구하고 이를 지역에서 실천하는 ‘기후 돌봄’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기후재난에 대처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생태전환을 이루기 위해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가고자 합니다.

기후 돌봄의 정의

기후위기는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국(CCCS)은 2023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1년간의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1.58°C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2023)의 예측을 넘어간다. 기후지체(climate lag) 현상도 중요하다. 이는 온실기체 배출을 완전히 중단한 이후에도 열을 머금은 바닷물의 수온이 느리게 내려가서 최소한 40년 이상 기후변화와 그 영향이 계속될 것이라는 과학적 개념이다. 기후환경 훼손의 심화로 지구상 거의 모든 생물과 사회적 약자들의 취약성이 커지고 사회 재생산의 기반이 교란되는 상황이다. 이제는 기후위기 완화(온실가스 감축) 행동 못지않게 기후재난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강화하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기후 돌봄’이란 그 최소한의 의미에서 기후위기로 인해 삶 또는 자기실현이 어려워진 인간/비인간 약자들, 기후재난 상황에 처해 취약해진 인간/비인간 존재들을 돌보는 일을 뜻한다.

1940년 이후 2023년까지 전 지구 월별 평균기온 추이. 2023년 6월부터 기존 추세를 뛰어넘는 기온 상승을 보인다. 출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국

돌봄의 확장

돌봄을 인간적 관점에서 정의하면 인간을 양육하고 먹이고 간호하고 돕고 사랑하는 일이다. 누구나 취약한 존재이기에 돌봄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고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돌봄을 사회적 관점에서 정의하면 생산을 위한 재생산이다. 임금노동을 하기 위해 가사노동이 필요하며 이런 돌봄은 전통적으로 가정 내 여성의 일이었다가 점차 상품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불평등, 돌봄/재생산 위기라는 현재의 복합위기는 돌봄을 중심 원리로 하는 사회경제 체제의 재구조화를 촉구한다. 생산을 위한 돌봄이 아니라 돌봄 자체가 목적이 되는 돌봄, 인간 돌봄을 넘어선 비인간 돌봄, 재난 상황에 노출된 모든 존재의 취약성을 고려한 돌봄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돌봄 혁명’이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유효한 방책이다. 돌봄은 삶의 번영과 복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자 역량이며, 돌봄 노동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자 민주적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전제(돌봄혁명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비인간을 가리지 않고 돌봄의 원리를 무한 증식시켜 나가는 ‘난잡한 돌봄’(더케어컬렉티브)이 필요하다.

인간/비인간 돌봄

인간이 만든 지질학적 연대인 인류세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한 각종 재난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비인간 존재와 자연을 파괴하고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그 반사효과로 인간도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 인간 돌봄만으로는 인간을 돌볼 수 없다. 인간/비인간 돌봄이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있다는 관점으로 자연과 경제를 다시 보자는 것이다. 이는 동식물을 넘어 자연물까지 포함한다. 그동안 각종 상품과 에너지를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기체와 폐기물을 과다 배출하면서 유지돼온 현행 추출자본주의의 바탕에는 비인간 자연물에 대한 대대적인 반-돌봄 행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비인간 자연물을 인간을 위한 상품원료, 자원, 재산으로 인식하는 관점, 존재 가치가 없는 죽은 물질, 자기실현의 지향과 속성이 없는 세계 내 비주체로 여기는 인간 중심적 관점과 태도가 깔려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라면, 이제 비인간 존재를 또 다른 세계 내 주체로서 사려 깊게 대하고 지속 가능한 인간경제의 동반자로서 최대한 돌보려는 태도가 요청된다. 이런 관점과 태도에 근거한 새로운 경제, 즉 생명의 경제가 모색돼야 한다.

완화와 적응의 차이

기후 완화는 이산화탄소 감축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재생에너지 전환, 친환경 교통수단 도입, 도시구조 개편,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개발 등 대규모 인프라와 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므로 국가나 기업이 주체가 된다. 이에 비해 기후 적응은 폭우에 대비해 하천과 생태계를 정비하거나 취약한 시설물을 보강하는 등 공공정책도 포함되지만, 동시에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노력과 역할이 중요하다. 예컨대 고효율 단열재를 사용한 집수리, 물관리와 절약, 녹지대/산림 조성, 옥상정원과 지붕 녹화, 빗물과 중수의 활용 등이다. 기후위기 이전에도 일상적으로 해오던 적응정책을 강조하다 보면 완화 노력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완화와 적응은 상호보완적이며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요점은 기후재난으로부터 회복력을 갖는 일이다. 시설물과 인프라, 산림· 습지를 위시한 자연 등을 일정하게 조정하는 행동으로써 향후 예상되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것, 재난 피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복구하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새로운 안녕과 번영의 길을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회복력의 의미

물리학 용어로부터 시작된 회복력 개념은 생태학자 홀링에 의해 ‘변화나 교란을 흡수하는 생태계의 수용력’으로 재정의됐다. 이것은 나중에 달라진 상태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발전을 이끄는 창발적인 사회적 생존능력까지 포함하는 사회-생태회복력으로 발전했다. 이 관점에서 회복력이란 개념은 시스템의 상태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며,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시스템 내부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외부의 여러 규모의 시스템 간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강조한다. 기후 회복력은 이러한 사회-생태회복력 논의를 기후위기 대응에 적용한 것이다. 그 사례로 2021년 유럽연합이 제시한 장기 비전은 2050년 EU가 기후 회복력을 갖춘 사회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손실과 손상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후위기 대응 전략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우선 과제는 적응을 거시 재정정책에 통합하기, 적응을 위해 자연기반 해법을 도입하기, 지역에서 적응 행동하기 등 세 가지다. 특히 세 번째, 지역 차원에서 각 지역의 정치사회적 상황이나 지리생태적 여건에 맞추어 회복력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은 기후 돌봄의 단위로서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게 한다.

기후 돌봄의 주체

기후 적응은 공공과 행정이 공적 예산을 투입해서 추진하는 공적 사업의 명칭으로 적합한 데 비해 기후 돌봄은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의 자조적이고 상호 부조적인 지역 보호 활동이면서 동시에 참여자들의 자아 해방적 연대 활동이 될 수 있다. 물론 기후 적응과 기후 돌봄, 두 가지는 국가의 적응정책이 실현되는 곳이 지역이며, 대부분 적응정책의 실행 책임은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 당장 재난에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보강하는 것부터 지역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기후 회복력이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노력,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 문화적인 변화, 심리적인 지원까지 기후 돌봄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물적 기반의 파괴를 예방하거나 복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평온한 마음,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 붕괴되지 않을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감 같은, 흔히 비물질적이고 심리적이라 간주되는 것 역시 포함된다. 구호 물품이나 재난지원금으로는 복구되지 않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도 적응이 아닌 돌봄의 이유가 된다. 이런 실천을 통해 기후위기 완화에 주안점을 두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적응하고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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